사법권은 '군사력'의 형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세계질서는 존재하는가?' 이 물음은 '국민국가의 질서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과 동일하다. 우리는 사람을 때려서는 안되고, 돈을 훔쳐서는 안된다. 타인에게 과도한 피해를 주는 행동을 우리는 '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이 같은 보호를 충분히 '질서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 보호의 주체는 두말할 나위없이 '국가'다.
그렇다면 '세계질서는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그것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권리를 지닌 '사법적 구성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일차적이다. 우리는 그것의 대답을 UN에서 찾을 수 있다. UN에서 만들어지는 주권과 국민국가가 가진 주권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해 UN은 실패했다. 그리고 그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근대세계가 '제국'으로 이행하고 있다는(이는 네그리와 하트가 <제국>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사실 그 자체다) 사실을 밝혀주는 역사적 지렛대로써의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오늘날 제국의 모습을 알기 위해서 사법권의 발현 형식을 근대 국가의 그것과 비교하여 생각하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근대 국가의 주권 개념은 홉스와 로크의 저작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초월자로써 국가를 설정한다. '개인' 위에 군림하며, 군사권의 독점을 통해 그들의 행위를 통제하는 집행자로써의 권리를 가지게 된다는 것. 이에 대해 로크는 국가를 개인과 개인이 맺은 다원적 구성체로써 토론과 합의를 통해 개인의 행위를 통제하는 자율주의를 주장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근대 국가안에서 군사력의 발현 형식이다. 근대적 사법체제 안에서 군사력은 내부적으로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권을, 외부적으로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한 '전쟁'을 수행한다. 한시 켄젤은 이와 같은 근대 국민국가의 형식적 틀에 맞추어, UN이라는 초국적 단위를 설정하였다. 물론 켄젤의 프로젝트는 실패하였고, 제국은 그가 구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꿈틀거리며 지금 이 세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제국은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전체 공간, 즉 끝없고 보편적인 공간을 덮는 새로운 질서의 구축 속에서 긍정되는, 제국적 질서 속에서 모든 시간을 포괄시키는 새로운 권리개념을 만들어낸다. 그 증후는 벨룸 주스툼, 즉 '정당한 전쟁' 개념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이 개념의 효과이다. 1993년 걸프전 과정에서 정치적 논의의 중심 서사로다시 등장한 이 개념은, 어떤 국가가자신의 영토적 통일성이나 정치적 독립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공격 위협에 직면할 때, 주스 아드 벨룸 (전쟁할 권리)을 갖는다는 생각에 주로 의거하고 있다.
제국은 그 시스템을 끊임없이 찬양하며 윤리적 완성체로써 규정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정당한 전쟁, 전쟁할 권리. 이 개념은 전쟁을 진부하게 만들고 전쟁을 윤리적 도구로 칭송하는 것을 포함한다. 전쟁을 진부하게 만드는 것과 칭송하는 것. 이는 근대 정치사상과 국민국가의 국제적 공동체가 단호하게 거부했던 생각이다. 근대 유럽 세계는 끊임없이 침략과 전세계를 상대로 영토분쟁을 일삼았지만, 그들에게 있어 전쟁은 어디까지나 '방어'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한국군의 존재 이유가 외부의 침략으로 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이듯이). 하지만 제국에서의 적은 정치적 탄압의 대상으로 축소되고(진부화되고), 동시에 악마로서, 윤리적 질서에 대한 절대적 위협으로서 절대화된다.
이 같은 권리 형식의 변형은 개입권 (right of intervention)의 발전을 통해 확인된다. 이러한 개입의 배후에 있는 것은 단지 영구적인 비상 사태와 예외의 상태일 뿐 아니라, 정의의 본질적인 가치들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되는 영구적인 비상사태와 예외의 상태인 것이다. 달리말해서, 제국에 있어 경찰권은 시민(국가)들의 합의가 아닌, '보편적 가치'에 의해서 정당화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현재 제국적 질서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당한 전쟁'들이 사실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면 누가 이 총체성의 세계 속에서 정의와 질서에 대한 규정을 결정하는가? 누가 평화 개념을 규정할 수 있으며, 누가 역사를 중지시키고 과정을 통합하고, 이러한 중지를 정당할 수 있다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둘러싸고 제국이란 문제 설정은 완전히 열려 있지, 닫혀있지는 않다.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야만인들의 반란은 사실 그들을 끝없이 '노예상태'로 두려는 욕망이라는 것을. 제국은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에 대항한 강력한 경찰 기능을 전개하며, 자신의 질서를 원래대로 되돌리려 하지만 항상 그들은 실패한다. 제국의 위기는 조선이 외부의 침략으로 붕괴되었듯 '외부의 위협'으로 부터 유래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부의 부패로 인해 붕괴한다. 부패는 새로운 생성의 선을 만나지 못했을 때 죽음의 선을 타게 된다. 그렇다면 대안은? 이 책에서 앞으로 꾸준히 연구되어야 할 제국의 근본 축을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라고 네그리와 하트가 그러더라.)
'세계질서는 존재하는가?' 이 물음은 '국민국가의 질서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과 동일하다. 우리는 사람을 때려서는 안되고, 돈을 훔쳐서는 안된다. 타인에게 과도한 피해를 주는 행동을 우리는 '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이 같은 보호를 충분히 '질서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 보호의 주체는 두말할 나위없이 '국가'다.
그렇다면 '세계질서는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그것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권리를 지닌 '사법적 구성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일차적이다. 우리는 그것의 대답을 UN에서 찾을 수 있다. UN에서 만들어지는 주권과 국민국가가 가진 주권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해 UN은 실패했다. 그리고 그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근대세계가 '제국'으로 이행하고 있다는(이는 네그리와 하트가 <제국>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사실 그 자체다) 사실을 밝혀주는 역사적 지렛대로써의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오늘날 제국의 모습을 알기 위해서 사법권의 발현 형식을 근대 국가의 그것과 비교하여 생각하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근대 국가의 주권 개념은 홉스와 로크의 저작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초월자로써 국가를 설정한다. '개인' 위에 군림하며, 군사권의 독점을 통해 그들의 행위를 통제하는 집행자로써의 권리를 가지게 된다는 것. 이에 대해 로크는 국가를 개인과 개인이 맺은 다원적 구성체로써 토론과 합의를 통해 개인의 행위를 통제하는 자율주의를 주장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근대 국가안에서 군사력의 발현 형식이다. 근대적 사법체제 안에서 군사력은 내부적으로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권을, 외부적으로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한 '전쟁'을 수행한다. 한시 켄젤은 이와 같은 근대 국민국가의 형식적 틀에 맞추어, UN이라는 초국적 단위를 설정하였다. 물론 켄젤의 프로젝트는 실패하였고, 제국은 그가 구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꿈틀거리며 지금 이 세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제국은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전체 공간, 즉 끝없고 보편적인 공간을 덮는 새로운 질서의 구축 속에서 긍정되는, 제국적 질서 속에서 모든 시간을 포괄시키는 새로운 권리개념을 만들어낸다. 그 증후는 벨룸 주스툼, 즉 '정당한 전쟁' 개념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이 개념의 효과이다. 1993년 걸프전 과정에서 정치적 논의의 중심 서사로다시 등장한 이 개념은, 어떤 국가가자신의 영토적 통일성이나 정치적 독립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공격 위협에 직면할 때, 주스 아드 벨룸 (전쟁할 권리)을 갖는다는 생각에 주로 의거하고 있다.
제국은 그 시스템을 끊임없이 찬양하며 윤리적 완성체로써 규정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정당한 전쟁, 전쟁할 권리. 이 개념은 전쟁을 진부하게 만들고 전쟁을 윤리적 도구로 칭송하는 것을 포함한다. 전쟁을 진부하게 만드는 것과 칭송하는 것. 이는 근대 정치사상과 국민국가의 국제적 공동체가 단호하게 거부했던 생각이다. 근대 유럽 세계는 끊임없이 침략과 전세계를 상대로 영토분쟁을 일삼았지만, 그들에게 있어 전쟁은 어디까지나 '방어'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한국군의 존재 이유가 외부의 침략으로 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이듯이). 하지만 제국에서의 적은 정치적 탄압의 대상으로 축소되고(진부화되고), 동시에 악마로서, 윤리적 질서에 대한 절대적 위협으로서 절대화된다.
이 같은 권리 형식의 변형은 개입권 (right of intervention)의 발전을 통해 확인된다. 이러한 개입의 배후에 있는 것은 단지 영구적인 비상 사태와 예외의 상태일 뿐 아니라, 정의의 본질적인 가치들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되는 영구적인 비상사태와 예외의 상태인 것이다. 달리말해서, 제국에 있어 경찰권은 시민(국가)들의 합의가 아닌, '보편적 가치'에 의해서 정당화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현재 제국적 질서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당한 전쟁'들이 사실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면 누가 이 총체성의 세계 속에서 정의와 질서에 대한 규정을 결정하는가? 누가 평화 개념을 규정할 수 있으며, 누가 역사를 중지시키고 과정을 통합하고, 이러한 중지를 정당할 수 있다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둘러싸고 제국이란 문제 설정은 완전히 열려 있지, 닫혀있지는 않다.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야만인들의 반란은 사실 그들을 끝없이 '노예상태'로 두려는 욕망이라는 것을. 제국은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에 대항한 강력한 경찰 기능을 전개하며, 자신의 질서를 원래대로 되돌리려 하지만 항상 그들은 실패한다. 제국의 위기는 조선이 외부의 침략으로 붕괴되었듯 '외부의 위협'으로 부터 유래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부의 부패로 인해 붕괴한다. 부패는 새로운 생성의 선을 만나지 못했을 때 죽음의 선을 타게 된다. 그렇다면 대안은? 이 책에서 앞으로 꾸준히 연구되어야 할 제국의 근본 축을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라고 네그리와 하트가 그러더라.)



